96주년 삼일절에
충청권 최초로 대전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위치는 시청 북문 길 건너 보라매 공원에 있다.


소녀상의 각 부분이 의미하는 것.

의자 옆에 대리석으로 새겨놓은 글씨도 찍었는데
내 모습이 돌에 반사되는 바람에 사진은 올리지 않고
일단은 글로 대체하고 나중에 사진으로 다시 올릴 예정이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피맺힌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이 땅 소녀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인권이 존중되고 평화가 실현되는 사회를 바라는
대전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광복 70년 분단 70년 2015년 3월 1일
대전광역시·대전 평화의 소녀상 건립 시민추진위원회



대전 평화의 소녀상 위치.
해미읍성을 뒤로 하고 해미성지로 이동.


해미성지는 해미읍성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참고로 해미성당은 조산교와 남문5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지도는 구글에서 가져왔다.


면사무소 클라스 ㄷㄷㄷ


소규모 해바라기 밭.


작품명 : 고개숙인 남성

해미성지에 도착.


해미순교성지는 1797년(정사박해)부터 1872년까지 박해가 있었던 곳으로
1. 조선시대의 순교자 약1만 명 가운데 충청남도 서북부(내포) 지역의 교우 1천여 명 이상이 순교한 곳이다.
2. 그러나 이곳 순교자들은 대부분 이름을 모르는 순교자로 남아있으니 그 이유는 당시 해미현은 무관영장이 지역통치를 겸한 막강한 권력을 남용하여 조정의 시책과는 무관하게 자유로이 박해를 하면서도 중앙에 보고하지 않았고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이며 이 가운데 인언민(마르티노), 이보현(프란치스코), 그리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비오) 세 분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2014. 8. 16.)
3. 그리고 이곳은 처형 방법이 사약, 몰매, 교수, 참수, 동사와 함께 사람을 살아있는 채로 땅에 묻는 생매장과 물에 빠트려 처형하는 수장형장이었다. (진둠벙)
4. 1935년 프랑스 범(Barraux) 신부에 의해 순교자 유해를 찾게 되었고, 뼈와 치아, 머리카락을 모신 기념관에는 순례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이곳은 순교자들이 죽음의 행렬 중에 바쳤던 '예수마리아' 기도 소리가 구경을 하던 외인들에게는 '여수머리'로 들렸기에 저들은 이곳을 '여숫골'이라 하여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그리고 해미지역에는 또한 신앙선조들이 압송되었던 '한티고개성지'와 투옥, 고문, 처형이 있었던 '해미읍성성지(옥터, 호야나무)', 그리고 자리개질 처형이 자행된 '서문밖성지'가 있는 곳으로 연간 10만여 명의 순례자들이 찾고 있다.

위 사진은 가로 1000 픽셀로 줄이면 글씨가 안 보여서 예외적으로 2000 픽셀로 올렸다.

뭐야 이거.. 2000 픽셀로 올렸는데 왜 1000 픽셀로 보여...


정문에서 사진을 담고 싶었으나 주차된 차량 때문에 측면에서 한 컷.


이름 없는 집.


한국인 st 성모마리아인가?


이번에 이 지역에서 순교한 세 분의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시복기념비.


해미 순교 성지 기념관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한 바퀴 둘러보았으나 사진은 찍지 않았다.


진둠벙.


진둠벙 (죄인둠벙)
팔을 묶어 끌려오던 신자들을 거꾸로 떨어뜨려서 이 둠벙 속에 처박혀 죽게 하였다.


따라서 여기는 천주교도들을 수장한 곳이다.




십자가의 길이라고 돌 10여 개에 지쟈쓰의 십자가의 길과
순교자들의 죽음의 행진을 조각을 해서 묘사했는데 사진은 찍지 않았다.


노천성당.






해미순교탑과 무명순교자의 묘.
조선조 천주교 박해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선열들의 유해 일부를 이곳 해미 생매장터에서 발굴하여 1935년 4월 2일 서산 상흥리 공소 뒷산 백씨 문중 묘역에 모셨다가 순교자 유해를 교회적 차원에서 관리하여 성지 순례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다시 원위치에 옮겨 모시다. - 1995년 9월 20일,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경갑룡 요셉





이 사진을 끝으로 터미널로 돌아가 차편을 확인하고
남는 시간까지 커피숍에서 Iced Americano 한 잔 하면서 부족한 모바일 폰 배터리를 충즈언~

*새 에디터로 작성시 텍스트형 위치태그가 사라져 이것이 고쳐지기 전 까지는 여행관련 포스트는 발행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새로 올림.
교황의 충남의 두 성지 방문을 맞이하여 미리 한 번 가보려고 일정을 짰으나
막상 가려니 귀찮아서 놓친 게 하루, 날씨가 안 도와줘서 포기한 게 하루..
이런 식으로 차일피일 늦추다 보니 이러다 교황께서 먼저 그곳에 갈 것 같아 큰 맘 먹고 출발.

했으나 분명히 전날 일기예보는 남부 지방에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왜 버스에서부터 비가 오는 것이냐.. 당연히 우산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망할 것.

게다가 자차로 1시간 조금 더 걸릴 거리를 버스는 오만군데를 다 들러 2시간 57분만에 도착.. 끄어..

안 그래도 비가 와서 솔뫼성지는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예상을 크게 벗어난 이동 시간으로 인하여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되었다.

허기를 달래러 시장에 들어가 뭐 먹을 만한 곳이 있나 찾아봤는데
영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서 이곳 저곳 거닐다가 우연히 해미읍성 발견-_-

일단은 요기를 해야겠기에 해미읍성과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다 국밥집을 발견하여 입장.

소머리국밥을 시켰는데 마늘을 많이 넣어 마늘향이 너무 진하게 우러났다.
마늘을 좋아하지 않는 1인이라 마늘향 때문에 다 못 먹었다.
삼계탕 안에 들어있는 마늘만 먹는데 그것도 마늘향이 안 나서 먹는 것이다.

배를 채우고 해미읍성으로 고고싱.


첫 사진은 심신을 치유해줄 꽃 사진으로.


입추가 지나서 그런가 코스모스가 피었다.


무궁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


민속가옥 1.
조선시대 민가로 부농의 집을 재현.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민가로 대청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ㄱ자형의 가옥은 ㅡ자형 가옥의 기본평면에서 발전된 것으로,
부엌 1칸, 방 1칸의 기본적인 생활공간의 형태로 필요에 따라 칸이 덧붙여져 확대된 것.
이 가옥은 부유한 농가로 각종 농기구와 농산물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와 부속채가 딸려 있는데
부속건물을 마당 한쪽에 치우쳐 지어 농경 작업을 위한 마당의 공간 활용을 높였단다.


좌측은 측간과 헛간. 우측은 부뚜막.


에그머니나.


닭장 속에는 수탉이~ Cock a doodle doo~ 꼬끼오~


한반도 모양으로 꽃을 심어놓았다.


민속가옥 2.
조선시대 민가로 상인의 집을 재현.
대들보 아래의 방을 일렬로 배치한 홑집, 즉 단일형 가옥으로,
우리나라 서부와 남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조선 후기 민가의 보편적 형태.
이 지역 민가들은 일반적으로 몸채를 ㅡ자형으로 하고 광, 외양간, 측간 등을 하나로 묶어 부속채를 구성한단다.
이 가옥 역시 부엌 1칸, 방 2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3칸 초가이며 부속채가 딸려있다.
장사가 주업이지만 텃밭 경작을 위한 기본적인 농기구를 갖추었다.


헛간.


민속가옥 3.
조선시대 민가로 말단관리인 서리의집.
부엌 1칸, 방 2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3칸 초가집.
ㅡ자형의 평면구성은 우리나라 농촌민가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 되는 공간배치로
부엌과 방들이 일렬로 연속 배치되어 있다.
모든 방이 남쪽으로 출입구를 두어 쾌적한 생활공간이 되도록 하고 있다.
방에 갖춘 간단한 문구류가 집주인의 직업을 말해준다.


세 곳 다 방 안에 레알 사람들이 있어서 방안 사진은 찍지 않았다.
제일 위에 민속가옥 1 사진 찍을 때 방 안에 할머니 계신 거 보고 깜놀.


이거 토란잎인가?
국민학교 저학년 때 동네에 저게 있어서 갑자기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순교기념비.


올 16일에 광화문에서 시복될 3인의 복자.
좌측 갓을 쓴 동상은 복자 김진후 비오,
우측 정자관을 쓴 동상은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
우측 무릎꿇고 있는 동상은 복자 이보현 프란치스코.


설명.


교황 맞이로 분주하여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너저분한 주변.


복자상 옆에 있는 옥사로 입장.

해미읍성은 우리나라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란다.
교도들을 투옥하고 문초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있던 옥사를 발굴 작업 뒤 복원, 재현.
1935년에 간행된 「해미 순교자 약사」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하였으며
내옥과 외옥이 있고, 각각 정면 3칸 건물로 남녀의 옥사가 구분되어 있다.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감옥같이 만들어 놨는데 교도관 집무실인 듯.


남자들 감옥.


회화나무. 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
지역민들에게 호야나무로 불리고 있단다.
1790~1800년대에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있던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으며
철사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현재까지도 희미하게 남아 있고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1940년대에, 가운데 줄기는 1969년 6월 26일에 폭풍으로 부러져 외과수술을 시행하였으나
재차 부패되어 2004년 4월에 외과수술 및 토양개량 등을 거쳐 보호관리되고 있단다.


동헌으로 ㄱㄱㅅ.
좌측 나무에 관한 설명도 사진을 남겼는데 글씨 부분이 하얗게 담기면서 결국 정보가 없ㅋ엉ㅋ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겸영장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란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군, 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를 겸한 지위였다.
현감은 시장 정도 되려나? 영장은 그 진영의 장이고 토포사는 도적잡을 목적으로 주던 벼슬이고 보통 진영장이 겸직.


동헌부속사.
조선시대 관아건물 배치로 보아 고자실(庫子室)로 추정되는 건물로
관아의 물품을 보관하고 출납을 맡아보는 하급관리를 고자라 하였으며 고자실은 이들이 근무하던 곳.


책실.
병마절도사 또는 현감겸영장의 사적인 일을 돕거나 그들 자제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하던 곳으로 일명 책방 또는 책사라고도 한다.


동헌 서쪽에 내아가 있어 한 컷.
내아란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로 동헌이 고을의 공무를 수행하는 곳인데 반해, 내아는 살림집.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2000년 11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동헌 우측으로 나오니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 옆에 이건 뭣이여? 돌탑들이 나란히 있다.


언덕 위로 오르니 장승과 정자, 청허정이 있었다.
청허정은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성종 22년(1491)에 세운 정자란다.
지금 모습은 과거 기록을 근거로 2011년에 개축한 모습이고 정자 안에 사람이 있어 가까이선 찍지 않았다.

1872년 고지도에는 청허정이 고지(古地)로 표기된 것으로 볼 때 그 전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신사를 만들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고 한다. 하.. 왜놈들..
좀 전에 올라온 계단이 신사를 건립하며 정상부로 향하는 진입로로 만든 계단이란다.

해미읍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천수만이 보인다는데 이 날은 흐리니 개코나~
청허(淸虛)는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


장승동상.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수령 100~200년 이상의 소나무가 피해를 입어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해미읍성과 역사를 함께한 소나무를 의미있게 활용하고자 장승동산을 계획하게 되었단다.
제작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장승들은 대통령의 근엄한 이미지를 탈피하여 얼굴의 특징적인 부분을 강조하여 만들었고,
그 당시 국정지표를 장승에 새겨 역사자료로 활용 할 수 있도록 하였단다.


뒤편엔 솔숲이 있어 산책하기 좋을 듯 싶다.


청설모가 보여 한 컷. 사진 중앙을 잘 보면 보인다.


배배꼬인 소나무.


힘들게 왜 구부렸니.


성벽쪽으로 올라가 성벽을 따라 이동하는 길에 나타난 해자.


잘 자라다 갑자기 요란하게 뻗은 소나무.




솔숲을 벗어나 다시 읍성 중앙부로 이동했다.
이곳에선 교황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


객사.
객사는 건물의 중앙 정청에 궐(闕)자가 새겨진 위패를 모시고
삭망에 관아의 대소 관원들이 국왕에 대한 예를 올렸으며,
양편 익실은 조정이나 상부에서 파견된 관원 및 귀빈들의 숙소로도 사용했던 곳.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1999년 7월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메인 게이트인 진남문을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황명 홍치 사년 신해 조 皇明 弘治 四年 辛亥 造.
황제의 국가인 명나라 홍치 4년, 신해년에 지음.
는 성종 22년, 서기 1491년.


진남문 위에서 찍은 읍성 안의 모습.


밖을 나서며 마지막 한 컷.

*위키피디아는 성을 castle로 썼지만 한국관광공사에선 fortress로 써서 한국관광공사의 영어표현을 따라 씀.

**새 에디터로 작성시 텍스트형 위치태그가 사라져 이것이 고쳐지기 전 까지는 여행관련 포스트는 발행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새로 올림.


올해도 어김없이 강릉 단오제가 열렸다.
기간은 31/05/2014 ~ 07/06/2014, 8일간 열린다.



역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위치한 서커스단.



사진이야 뭐 서커스단 자리한 것만 찍으면 다 찍은 거지.


석가탄신일에 전주에 갔다.
'역린' 무대인사 온다는 소식에 급하게 질렀는데 딱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다소 여유있게 도착을 하여 돌아갈 차편을 미리 알아봤는데
아뿔싸. 오늘은 황금 연휴의 마지막 날이렸다.
급하게 돌아갈 고속버스를 알아봤으나 이미 다 매진이었다.
심야버스 한 대만 남았는데 그 때까지 무얼하든 버티진 못하겠더라.

급하게 코레일톡을 열어봤는데 다행히 차편이 있었다.
그러나 이걸 보험으로 생각하고 차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약 2~3분 동안에 전부 매진 ㄷㄷㄷ

입석표 역 발매중이라는 멘트를 보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역엔 예상 외로 사람이 없었다. 다들 인터넷 예매에 성공한 탓인가.

티켓을 사자마자 다시 택시를 잡아 타 롯데백화점으로 이동했다.
어디서 점심을 먹을꼬 하다가 눈에 보이는 중식당에서 해결.
맛이 있어 따로 포스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집은 아니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미리 포스팅해뒀다. 링크.

영화를 보고 나와서 뭘 할까 어디로 갈까 고민을 좀 하다가 일단 한옥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여기서 바로 전주역으로 가면 길어야 30분 정도만 걸으면 될 것 같은데 남는 시간이 너무 길고
한옥마을에서 전주역까지 걸으려면 엄청 걸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루트는 전주천을 따라 가기로.



무작정 천변을 걷기 보다는 나름대로 최단루트로 가길 원해서 도로로 올라갔다.

쭉 가다보니 전주 차이나거리에 입성.


전라감영2길(=차이나거리) 중간에 서서.

차이나거리를 벗어나 남부시장 방향으로 계속 가다보니
1박 2일에서 이수근과 주원이 먹었다는 중국집이 나타났다.

오호?
나는 대포폰데프콘의 중국집만 생각했던 터라 뜻밖의 발견에 기분이 좋았지만
여기서 무엇인가를 먹다간 분명 걸어서 전주역까진 가지 못할 일이 불 보듯 뻔해
무심한 듯 Chic하게 지나쳤다.

처음 이곳, 남부시장에 왔을 때 주차했던 곳도 지나치며 풍남문에 도착했다.


재빨리 한 컷 담았다.

길을 건너 한옥마을로 입성.


전동성당에서 급하게 한 컷.

아, 사람 많다.
연휴 마지막날에 사진 찍은 이 시간이 17시 25분인데 아직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왜지? 왜 집에 안 가는 거지?
다들 자차로 왔나 ㄷㄷㄷ

한옥마을 역시 스치듯 안녕하며 50분을 더 걸어 전주역에 도착했다.
1시간 40분 가량의 도보 이동 끝.



망할 무궁화호.
한 시간 40여 분 가량 걸어서 다리도 아픈데
그것도 모자라 열차에선 계속 서서가는데 망할 기차는 내 목적지까지 21분을 연착했다.

고단한 전주에서의 하루 끝.


도보 이동 루트. 지도는 네이버에서.


검은 별이 있는 곳이 지난 포스트 마지막이고
검은 별에서 흰 별로 가면 아래와 같은 사진이 나온다.


뭔 건물을 짓고 있는데 요상하게도 생겼다.


허난설헌 생가터.

시간이 다소 늦어서 기념관은 패스하고 바로 생가터로 왔다.

난설헌 허초희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이다.

남편과의 불화, 고부갈등, 유산, 오빠와 동생의 귀양 등
갖은 우화를 겪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안뜰.





집안을 한 바퀴 돌았으니 목적지를 향해 이동.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지도.


바우길 지도.


난설헌교.


요것은 홍길동인가봉가?


교산교를 지나면 보이는 경포호.
호수 둘레를 따라 걷는 길엔 홍길동전에 관한 조형물들이 늘어서있는데
전남 장성과의 홍길동 다툼에 패하여 못ㅋ씀ㅋ

강릉시는 저자 허균이 이곳 태생이며 홍길동은 가상의 인물임을 내세웠고
장성군은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과 한자만 다를 뿐
같은 이름의 실존인물이 살았다는 것을 이유로 다퉜는데
결과적으로는 장성이 이겨서 강릉시에서 홍길동을 앞세운 마스코트 따위가 다 사라졌다.


오리 좀 찍으려고 다가갔더니 슬금슬금 도망갔다.


경포대를 담으려고 했는데 어둡게 나와서 눈 크게 뜨고 자세히 봐야 보이는 게 함정.


이 역시 마찬가지.




저 고층 건물은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


나무가 누웠다. 고목枯木이겠지?


지도.




이제 목적지에 다 와간다.


이 표지판 옆에 보이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목적지다.


횡단보도와 바우길 표식.

길을 건너 저 건물 사이의 골목을 빠져나오면..


到着いたしました。


현 위치, 북위 37.48.081, 동경 128.55.321


바다다~


끝.

지금까지 강릉 바우길 14구간 - 초희길 포스트였습니다.



...

..

.






이젠 퇴근에 앞서 경포해변 주출입로로 가보자꾸나.


마침 갈매기가 보여서 요 하트 안에 담아보려고 했는데 점같이 작아 보여서 실패.


얘는 일부러 여기에 심은 건가.


오리五里 바위, 십리十里 바위.


요 앞에 어린 묘목과 두 바위를 함께 담아보려했는데 어린 묘목이 제대로 안 나왔다.




경포해변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탄생의 돌.


떨궜는데 갈라졌ㅋ엉ㅋ


분홍색은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경로고,
빨간색은 바우길 사이트에서 알려준 경로며,
초록색은 실제 내가 이동한 경로다.


앞선 포스트.
강릉 바우길 14구간 - 초희길 1
강릉 바우길 14구간 - 초희길 2
강릉 바우길 14구간 - 초희길 3
강릉 바우길 14구간 - 초희길 4




쌔빠지게 달려서 도착한 대천해수욕장.
한 6~7년 만에 다시 왔지 싶다.

바람 엄청 불었다.

이 사진 찍을 동안의 2분 남짓만 바다를 보고
재빠르게 식당으로 들어가 이른 석식 후 폭풍 귀가.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앞차 궁디 미등만 계속 보며 오는데
어휴 지겹고 피곤해..

.
해수욕장의 명칭을 해변으로 바꾼 지자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지자체도 있는데
대천해수욕장은 해수욕장의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교통 표지판에 나온대로 적는다.
북쪽으로 쭉 올라오다 보면 과속방지턱과 횡단보도가 하나 나온다.

그 횡단보도가 바로 목적지.


파란색 바우길 표시가 보이는가? 요 집이 보이면 다 온 거다.
사진 우측에 전봇대가 있는 곳으로 진입하면 된다.


그러면 나오는 모습.

앞으로만 쭉 가다보면 언덕배기가 나오는데..


저기 위성방송 접시 옆에 난 길로 들어가면 된다.

그 길로 올라가면 어마어마한 경사도의 언덕이 나오는데 이걸 살포시 넘으면 우회전 하시라.


그러면 나타나는 소동산 봉수대 입구.

소동산 봉수대만 잠깐 찍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코스니까.


소동산 봉수대 도착.






봉수대 위에 오르니 경치가 직이네예~
현재는 강릉항으로 이름이 바뀐 안목항의 뒤편에 자리한 산이 아주 잘 보인다.


이 앞은 배수지? 뭐더라? 아무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진입은 불가.


봉수대에서 바로 보이는 종합운동장 조명탑.


강릉봉수지에 관한 설명.


봉수대 뒤편엔 체육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바우길 표식이 보이질 않았지만 일단 앞으로 전진하다 보니 나온 보래미 서낭당.



암만 가도 바우길 표식이 없어 잠시 서서 스마트폰으로 코스 확인을 하니 이런 젠장..
길을 잘못 들다니!! 내가 길을 잘못 들다니!!

다시 오르막을 매우 달려 아까 소동산 봉수대 계단 끝에 도착. ㅠㅠ


여기서 사진에 난 곳으로 가야 한다.
소동산 봉수대는 잠시 들리는 포인트였다!


이곳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를 위해 몇 개의 링크장을 세울 부지.

앞으로 계속 가다 보면 바우길 표지판이 보인다.


이 표지판이 보이면 숲으로 난 길로 가면 된다.

갈림길이 보이면 당황하지 말고 도로에 붙어 간다고 생각하고 가라.


첫 번째 동산을 타고 내려오면 또 안목이 보인다.

길 따라 계속 전진.


하면 또 다시 나오는 바우길 표지판.
그러면 다시 숲길로 이동.


춘갑봉 서낭당.






봉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만큼 낮은 춘갑봉.

다시 동산을 내려오면 길 건너로 진입해라.


주변 지역 지도.


요 야트마한 언덕을 넘으면 다시 또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거기엔 아까 소동산 봉수대 옆에서 보았던 체육시설이 들어섰다.

10여 명 가량의 시민들이 있어서 그 분들 안 담기게 하려면 사진을 찍으나 마나라 찍지 않았다.


가다 보니 경포 호수와 바다가 같이 보여서 한 컷.
우왕, 짱인데?


카메라 앱에 내장된 보정기술.


오잉? 참호가 잉네?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올라가면 안 되고 좌회전 해야 한다.


숲.
딱히 이 부근엔 바우길 표식이 없는데 그냥 앞만 보고 가면 결국 진행 방향이다.
그러면 다시 도로가 보이고 횡단 보도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고고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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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모루 도서관 뒤에 자리한 지혜의 계단을 타고 내려와서
바우길 표지판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보이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아래 모습이 나온다.


옛날엔 임영고개였는데 임영고개 부분을 파내고 이명고개로 새로 낑가놨다.
왜지? 임영관이 있었으니 임영 아닌가?

명과 고 사이에 붙은 건 2013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을 홍보하는 스티커인데 개념 좀 탑재하지..
저런데 붙였으면 다시 떼어내야 하는 거 아닌가. 기독교 뭐시기에서 붙였던데..

각설하고 사진 중앙에 보이는 강릉명륜고등학교 방향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리로 가서 학교내로 진입하지 말고 교문 바로 왼쪽으로 진입하자마자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된다.


이 건물, 계련당 왼쪽이 진행방향이다.


계련당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업데이트 하겠다.
안내판 사진을 찍었는데 하필이면 좌측 한글 안내문이 짤려서 올릴 수가 없ㅋ엉ㅋ


계련당 좌측에 난 길로 오르면 요런 모습이 보인다.


강릉명륜고등학교와 황영조 체육관과 향현사.
명륜고 좌측에 희미하게 보이는 기와 건물은 강릉향교다.

향현사와 강릉향교는 초희길 코스는 아니라서 여기에 올리진 않고
나중에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화부산에 올라온 게 국민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때
현장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소풍왔을 때니까 세월이 벌써 어마어마하게 흘렀다.


운동시설도 있네.


시계도 있다.


여기서 우회전.


저기도 운동시설이 있네.

저기 보이는 계단으로 오르면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곳으로 도착.


저기 강릉시청이 보인다.


여기가 가장 높은 곳인데 나무가 많아 전망이 썩 좋진 않다.
나중에 잎이 무성하게 자란다면 그나마도 안 보이겠지.

들어온 반대쪽 진입방향으로 전진.


저기 파란 바우길 표식이 보인다.


기차가 보여 한 컷.


길 따라 쭉 내려오면 또다른 전망 포인트가 있다.


오, 이곳은 탁 트여서 전망이 좋다.
저기 멀리 바다도 보인다.




똥구린 화질이 되어버리는 파노라마샷.


강릉역에 서있는 기차들.


역앞 광장이 주목되게 찍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릴 때 저곳에 마카 모데서 응원을 했단다. 그때 당시 난 가지 않았다.

은근히 반골기질이 있어서 남들 다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기도 했고
농구를 더 좋아했기도 해서 집에서 NBA Live 게임 했었다능..
對 이탈리아 경기에서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을 땐 NBA Live를 하고 있었고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을 땐 샤워중이었다. ㅋ

길 따라 이리저리 가다보면 빠져나가는 길이 보인다.


여기.


현대 오일뱅크 왼쪽 길로 진입해서 우회전에 좌회전하면 가작다리 노인회관이 나오는데 그 뒷길로 진입하면 된다.


모르겠으면 빛사랑교회 표지판을 따라 가자.


가작다리 노인회관 뒤에 난 길로 가면 된다.


실로 오랜만에 오르내린 화부산을 바라보며.


조기 표식에 붙은 계단을 오르면 된다.
이 산은 엄청나게 가팔라서 숨이 헉헉..


무덤을 낀 채로 오면 된다.
이 사진은 돈 직후에 뒤돌아 찍은 사진.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지만 건너라능.


여기도 경치가 좋네.


바우길 코스는 이쪽인데 조금이라도 더 산속을 걸으라고 병맛같은 코스를 만들어냈다.
굳이 이쪽 길로 가지 말고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녹색 울타리 길을 따라서 가는 게 더 낫다.

나는 만들어놓은 길로 가야겠다 하는 사람은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기껏 코스따라 왔는데 도착한 곳이 여기라니.. 여기라니!!
왜 이 따위로 코스를 만들었냔 말이야.

저 위에 산소에서 사진 찍었는데 병맛같은 코스를 따라 온 곳이 고작 수십 보 아래에 있는 산소.


이 길로 내려오게 된다.
이 사진은 다 내려온 뒤에 돌아서서 찍은 사진.

이제 횡단보도를 건너서 중고차 판매소가 있는 길을 따라 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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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 마지막에 강릉IC 방향으로 가라고 했는데
그 첫번째 골목, 샘터 교회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하면 데크 계단이 나오는데 그리로 올라가면 된다.


조기 계단 끝에서 우회전 해야 초희길 코스지만,
나는 경치 좀 보려고 좌회전했다.


사진 중앙의 삼거리가 지난 포스팅 지도 중앙에 있던 원대로다.


강릉시청이 조기잉네?



사진 찍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ㄱㄱ.




운동하는 분들이 좀 있어서 최대한 그 분들 사진에 담기지 않도록 찍다보니 요거 하나.




미끄럼틀이 있어서 꼬맹이들도 많았다.
노인과 아이가 공존하는 원대재 삼림욕장.



신발 때문에 발뒤꿈치 물집이 터져서 걸을 때마다 죽을 맛이다.


사진에 보이는 저 골목에서 산으로 가는 비포장 좁은 길로 올라가야 한다.

계단 내려가는데 나무 턱으로 만든 계단이라 신발이랑 뒤꿈치랑 자꾸 닿아서 죽을 맛이다..



길 건너서 저기 올라갈 때도 뒤꿈치 ㅅㅂ... ㅠㅠ




올ㅋ 강릉제일고등학교 (舊 강릉상고) 운동장에 잔디 깔았네.
국민학교 다녔을 때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보질 않아서 허허..


화면 우측 중앙에 있는 빌딩은 강일여자고등학교 기숙사다.


사진 뒤에 있는 고층 아파트는 지은지 2~3년 정도 된 아파트고,
앞에 있는 현대 아파트는 지은지 한 20년 정도 됐지 싶다.

현대 아파트 지을 때 그 주변에 있던 연립 주택에서
이 아파트가 우리집 햇빛 가린다고 막 플래카드 내걸고 시위하던 기억이 나네.

화면 중앙에 3층짜리 건물 세개 서린빌인가 뭔가는 언제 생긴 건물이지...
처음 보는 것 같다. 이 건물만 빼면 내 국민학교 시절이랑 비교했을 때 별반 차이가 없는 듯.

이제 강릉제일고교로 내려갔다.

이 길도 국민학교 때나 내려갔을 텐데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바뀌지 않은 듯 싶다.


강릉제일고 뒤편에 난 길로 진입했는데 공사중인 모습보고 깜놀..
길 사라진 줄 알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길을 뚫고 있는 듯.
이 동네 사는 사람들 편해지겠네.


법무부 강릉보호관찰소와 동북지방통계청 강릉사무소.
이 자리는 옛날 춘천지법 강릉지원과 춘천지검 강릉지청 건물이다.

국민학교 때 친구 아버지가 검사셔서 한 번 놀러(?), 견학차(?) 간 적이 있었다.

요즘이야 개나 소나 다 대학을 가니 대학엘 가지 않은 사람 찾는 게 더 어렵지만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만 해도 부모님 중에 대학 나온 분 찾는 게 희귀한 케이스였다.

지방에 살았다 보니 아무래도 부모님 최종학력이 다소 낮은 측면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위에 언급한 이 친구 아버지는 최종학력이 반에서 유일한 대학원 졸이라 더 기억에 남네.


강릉보호관찰소.

여기도 언덕 위에 있어서 전망이 좋다.


거지같은 폰 카메라의 한계.


동북지방통계청 강릉사무소.


아까 그 건물 맞은편엔 강릉미술관이 있다.
이 건물은 예전에 강릉시립도서관 자리였다.


지금은 요런 거 하고 있데..
잠깐 들어가봤는데 입장료는 없었다.
전시실 하나만 대충 빠르게 스윽~ 둘러보고 나왔다.


출입구 옆에 있던 조각.

이제 언덕 아래로 내려가서 이명고개를 향해 올라갔다.


이명고개에서 행복한모루 도서관으로 향했다.
네이버 지도상에는 이 도서관은 코스가 아닌 것으로 나오지만
바우길 홈페이지에 가면 이 도서관 앞으로 올라가서 뒤로 내려오는 게 코스다.


어린 친구들이 꾸민 걸 이래이래 붙여놨다.


도서관 전경.

이 건물은 원래 명주군청이었는데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이 통합되면서 강릉시청 별관으로 쓰였었고
그 이후에도 이런 저런 용도로 쓰였다가 현재는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솥뚜껑 같은 건물이 보이는 곳으로 진입해야 한다.

저 솥뚜껑 지붕 건물은 황영조 체육관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의 업적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의 모교인 강릉 명륜고등학교에서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지었나보다.

벗뜨, 초희길은 저 건물로 향하면 안 되고 교문 왼쪽에 난 길로 진입해야 한다.


어린 친구들이 요런 놀이를 했네. 이게 이름이 뭐더라?








건물들. 舊 브이오락실과 舊 열린글방도 보인다.


지혜의 계단.




이 지혜의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우회전 한 뒤에 횡단보도를 건너 강릉 명륜고등학교 진입로로 가면 된다.

하지만 난 발 뒤꿈치가 너무 아파서 다음에 마저 걷기로 하고 퇴각했다.

...
..
.



흐엥.. 발뒤꿈치 좀 보소..
군대에서 행군했을 때도 이런 크기의 물집을 내 가진 적이 없었소.


피 묻은 양말.


네이버 지도를 통해 본 이동 경로.
임영교차로, 행복한모루까지만 이동했다.

* 눈 온 사진은 당연하게도 나중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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