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워킹의 하루.

본격적인 İstanbul 탐방?에 나섰다.

근처에 있는 자미들은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일단은 멀리 가보기로 했다.

성벽이 있다하니 아니 가볼 수 없지 않나?


Sultan Ahmet Camii.
Sultan Ahmed Mosque.
속칭 Blue Mosque.

이 화면에선 안보이는데 블루 모스크는
터키에 단 두 곳 뿐인 6개의 미나레[터 Minare, 英 Minaret]를 가진 모스크 가운데 하나다.




Ayasofya. [그 : Αγία Σοφία, 라틴어 : Sancta Sophia, 英 : Hagia Sophia]
아야소피아, 아야 소피아 혹은 하기아 소피아.
그리스어로 Αγία Σοφία는 '성스러운 지혜' 라는 뜻이란다.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 입구 가운데 하나.


Alman Çeşmesi [英 German Fountain]
가제보 스타일의 분수.
1898년, 독일 제국 황제 Wilhelm 2세의
이스탄불 방문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독일에서 만들고 하나씩 배송된 후 1900년에 지금 위치에서 조립했다.









아는 길로 가야하니 일단은 Grand Bazaar로 이동.

한길로 쭈욱 가서 맞은편으로 나왔다.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조금 더 가니
제법 규모있는 광장이 나왔다.


국기가 나부끼는 저 곳이 무엇인고 하니
İstanbul Üniversitesi, Beyazıt Kampüsü‎다.

안으로 들어가볼까 했는데
입구에서 경찰이 지키고 있어서
외지인은 안받나 싶어 쫄아서 못들어가봤다.


비둘기가 겁나게 많다.


Bayezid Camii 혹은 Sultan II. Beyazıt Camii.
영어로 Bayezid II Mosque.

이 자미는 술탄 Bayezid 2세가 건립했다.
Constantinopolis의 함락 후 İstanbul에 건립된 두 번째로 큰 자미였다.

초기의 Külliye로서,
Fatih Camii는 지진에 의해 나중에 파괴되었는데 다른 양식으로 완벽히 재건되었다.
그러므로 이 자미는 상당히 역사적으로나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다.

Bursa에 캐러밴서리Caravansary를 지은 것 외에
건축가 Yakup şah에 대해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미의 세련된 스타일은 초기 오스만과 서구 건축 기술의 경험을 보여준다.

주위의 Külliyesi는 1501년부터 1506년까지 건설되었다.

'Küçük Kıyamet[작은 묵시록]'라 불리는 1509년의 지진 후,
돔은 부분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그리고 Mimar Sinan이 추가 수리를 1573–74년에 지휘했다.
미나레[터 Minare, 英 Minaret]는 1683년과 1764년에 각기 불탔다.

*Külliye는 Complex인데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자미를 중심으로 학교와 기타 시설물이 군집해 있을 때
쓰는 표현이니까 단지團地 정도의 표현이 되겠다.
예를 들어 정부종합청사는 The Government Complex.

Medrese[英 Madrasah]는 이슬람교의 교육기관,
İmaret은 오스만 시대의 Soup Kitchen이라고
빈자貧者와 Medrese의 학생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곳이었다고 한다.
Hamam은 목욕탕.

북서쪽으로 Keep Going.


Şehzade Camii.
İstanbul의 세 번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이 자미는
1543년, 술탄 Süleyman 1세가 천연두(마마, 두창)에 걸려
21세[혹은 22세]의 나이로 죽은 그의 장남 Mehmet 왕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것은 제국의 건축가 Minar Sinan의 첫번째 대규모 의뢰였고 1548년 완성되었다.
이 자미는 건축사학자들에게 Sinan의 고전적 오스만 건축의 첫번째 걸작으로 평해진다.


Şehzade Camii 옆에 있는 Saraçhane Parkı‎.


Bozdoğan Kemeri.
영어로 Valens Aqueduct.
한국어로 발렌스 수도교.
터키어를 번역하면 쇠황조롱이 수도교;


2층 버스도 충분히 통과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런데 터키에도 2층 버스가 있었어!!


길 건너편에 있는 Fatih Parkı로 갔다.


Mehmet 2세 혹은 Fatih Sultan Mehmet.
Fatih는 정복자, the Conqueror라는 뜻이다.

1453년, 그의 나이 21살에
Constantinopolis[그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한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해
Imperium Romanum Orientale[그 Ανατολική Ρωμαϊκή Αυτοκρατορία, 韓 동로마 제국] 혹은
Imperium Byzantinum [그 Βυζαντινή Αυτοκρατορία, 韓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1444년, 아버지 Murat 2세의 갑작스런 퇴위로 12세에 술탄의 자리에 올랐으나
Edirne-Szeged 조약을 깨버린 헝가리 왕국의 갑작스런 침략에 아버지 호출~

아버지가 거절하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술탄이라면 돌아와서 당신의 군대를 이끌어 주십시오.
만약 내가 술탄이라면 이에 의하여 당신에게 명령하노니 돌아와 나의 군대를 이끄시오."

그리고 아버지 Murat 2세는 돌아와 군을 이끌고
바르나 전투[Battle of Varna]에서 승리를 한 뒤
1446년 다시 보위에 올라 1451년에 숨을 거둘 때까지 술탄의 지위에 있었다.

아버지 사후 다시 술탄의 자리에 오른 Mehmet 2세는
해군력 강화에 힘쓰고 또한, 같은 해에 Constantinopolis 정벌을 준비했다.

Anadoluhisarı보다 더욱 강한 요새인 Rumelihisarı를 유럽쪽에 세워
İstanbul Boğazı[보스포루스 해협]을 완벽히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1453년, Constantinopolis 포위에 나섰다.
포위에 나선지 57일 만인 5월 29일, Constantinopolis는 함락되었다.
이 정복이 있은 후, Mehmet 2세는 Adrianopolis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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