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와 Harem으로 가는 길.

Harem은 금남의 구역이다.
Selamlık은 그 반대의 의미로 남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냉온수 구분이 가능했단 말인가,
왜 수도꼭지가 두 개란 말인가!!


욕조라기엔 다리를 뻗을 수 없는 작은 틀.












Atatürk가 숨을 거둔 그 침대.

Mustafa Kemal Atatürk (1881–10/Nov/1938)
오스만 제국과 터키의 장교이자 혁명가, 그리고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고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의 장교로 있었다가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고는 제국을 분할하려는 연합국에 대항하여 일으킨
터키 독립 전쟁에서 터키 혁명을 이끌었다.
Ankara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연합국의 공세를 물리쳤다.

그 후 Atatürk는 정치, 경제, 문화 개혁에 착수하여,
이전 오스만 제국을 근대, 서구화, 세속주의 민족 국가로 바꿨다.

이런 근대 터키를 세운 Atatürk의 개혁을 Kemalism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조금 더 알고 싶으면 네이버 캐스트로 접속. 이곳








별도 봤나..


천정에 균열이 있구나.























,
대중 교통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돌아다니다보니 어지간한 길은 다 알 것 같다.

Dolmabahçe Sarayı로 가는 트램 노선도 다 알고 있어서
트램 길 따라 Dolmabahçe Sarayı로 다시 갔다.


가는 길에 본 넘치는 비둘기 떼.

지난번에 왔을 땐 만료된 학생증이라
꺼내지 않고 그냥 티케팅 했었는데
숙소에 있던 분들이 만료일자 검사 안한다고
그냥 한 번 해보라고해서 학생이라며 슥~ 밀어넣었는데 됐다.

그래서 Harem까지 2 TL에 결제 완료.
사진 촬영 티켓은 지난번에 썼던 걸 다시 썼다.

사진 촬영 티켓은 훼손을 전혀 안했으며
그래서 어젠 다른 분 빌려주기까지 했다;


부동자세로 지키고 있는 모습은 대단하다.
그런데 이동시에 제식 동작은 영 그렇다.

먼저 지난번에 이동했던 Selamlık을 다시 들어갔다.
지난번에 찍지 못했거나 안찍었던 구도로 찍거나 지나쳤던 부분들을 찍었다.


















벗긴 곰.






공사중이다.








세면대.


화장실.




천정.






Sultan Abdülmecid I.
오스만 제국의 31대 술탄이다.


32대, Sultan Abdülaziz I.


Sultan Mahmud II.
30대 술탄이자 위에 있는 두 술탄의 아버지다.
















조각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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Çinili Köşk Müzesi. [Tiled Kiosk Museum]


고양이가 자세를 잡고 있다.


슬금슬금 걸어온다.


가까이서 포즈를 취해준다.




이건 뭐하는 물건이야.






이건 벽이었나, 천정이었나.


욕실이겠지?


문양이 화려하다.


이건 천정일 거야.


이건 도자기일 거야.


이건 이름이 뭔질 모르겠네.




밖에 나가니 고양이 천지.

밖으로 나와서 숙소에서 삐대다가
해질녘에야 다시 슬금슬금 나와서
Göreme 가는 티켓을 알아보기 위해 여행사를 찾아갔다.

버스 회사가 Metro하고 Nevşehir가 있는데
Nevşehir가 5 TL 쌌나?
그랬을 건데 시간이 Metro가 더 마음에 들어서
내일자 Metro 사 티켓 50 TL 지불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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Çinili Köşk Müzesi. [Tiled Kiosk Museum]




Alexander Sarcophagus.
알렉산드로스 대왕[그 Αλέξανδρος ο Μέγας, 英 Alexander the Great]의 석관.
이 박물관의 대표적인 전시물 가운데 하나로 보존이 매우 잘 됐다.

레바논의 Saïda [صيدا‎] 혹은 Sidon 지역에 있던 공동묘지Necropolis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원래는 Issus 전투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Sidon의 통치자로 임명된
Abdalonymus[Ἀβδαλώνυμος]의 석관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한다.

내용은 Issus 전투를 다룬 모습이다.

사진을 확대.


사진 맨 왼쪽 사자 모양의 투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알렉산드로스 대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인을 쳐부수는 모습이다.


반대편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압달로니무스와 사자 사냥을 하는 모습이다.


































기원전 500년 경, 시돈Sidon의 왕 Tabnit의 미라란다.
미라라기 보다는 온전한 뼛조각이라고 보는 게 나을지도..-_-;
















얜 뭔데 저 위치에 구멍이 뚫렸을꼬?
,

V&A Museum에서 봤던 녀석이랑 비스무레하게 생겼다.


여긴 출입을 차단하고 있는 곳인데
위에서 그냥 한 번 찍어봤다.


전경.


입장하니 바로 보이는 Atatürk 흉상.




이건 남자야, 여자야?
여유증있는 남자겠지?


인물사진 찍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조각상 찍으면서 이런 저런 구도를 잡아본다.








누가 이자의 수급을 떼어갔나.


이것도 남자야, 여자야?
이건 너무하잖아...




겨털도 조각하는 세밀함.


돌이라 힘들겠지만 소재만 달리하면
선수상으로 써도 될 것 같다.






아이.




이건 아침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탤런트 참 닮았는데
누군지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




가슴을 너무 만진 탓인가 가슴에 때탔다.




머리에 구멍이 송송~




행운의 여신 티케[그 Τύχη, 英 Tyche].


유혹의 몸짓.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니라 말을 탄 트라키아인을 돋을새김한 작품이다.

트라키아[라 Thracia, 그 Θράκη, 불 Тракия, 英 Thrace, 터 Trakya]
: 발칸반도 남동쪽을 부르는 지명으로 오늘날 터키의 유럽 지역, 그리스 북동부 일부, 불가리아 남부 지역이다.


부스러기?들을 저렇게 정렬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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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와 어디로 갈까 하다가
아래로 내려가서 İstanbul Arkeoloji Müzesi에 가기로 했다.


문 모양Door-shaped 장례식 석주란다.


장례 과정을 그린 파피루스.


이집트로부터 선물받은 오시리스 신 조각상.
오시리스는 명계Afterlife의 신이다.

































이 점토판이 뭣인고 하니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린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파라오 람세스 2세[Ramesses II, Rameses II or Ramses II]와

최초의 철기국가 히타이트 제국의 전성기를 이룩한
하투실리 3세[Hatusiliš III or Hattusili III] 사이의 조약으로

세계 최초의 평화 조약이라고 일컫는 Kadesh Treaty다.
또는 Treaty of Kadesh, Ramses-Hattusili Treaty.

기원전 1274년 경 히타이트 제국과 고대 이집트 왕국이
지금의 시리아 지역에서 다툰  Kadesh 전투에서
양국은 막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누구도 결정적인 승리를 갖지 못했다.
충돌은 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15년 더 지속했다.

사실 Treaty of Kadesh라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조약이 체결된 것은 전투가 끝난 뒤 한참 뒤이고
Kadesh라는 말은 언급되지 않는다.

양측 모두 평화 협정에 흥미를 갖고 있었기에 체결할 수 있었다.
이집트는 "Sea Peoples"로부터의 위협에 직면해있었고,
히타이트는 아시리아의 성장을 우려하고 있었다.

람세스 재위 21년인 기원전 1258년 경
둘 사이에 조약을 체결 완료하였고 80년 뒤 히타이트 제국이 붕괴할 때까지 유효했다.

이 평화조약은 두 가지 버전으로 기록 되었는데,
하나는 이집트 상형문자, 다른 하나는 쐐기문자를 사용한 아카드어로 기록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버전 모두 살아남았다.

다른 조약들과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은
두 언어의 버전은 각각 다르게 쓰여있다는 것이다.
글의 대부분은 동일하지만,
히타이트 버전은 이집트에서 평화를 간청했다고 주장하고 이집트 버전은 그 반대다.
각국에 남아있던 일말의 자존심인가?

이 조약은 銀板으로 만들어 이집트에 주었고
Temple of Karnak[카르낙 혹은 카르나크 신전]에 새겼다.



이 판은 1906~1908년 독일의 고고학자 Hugo Winckler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발굴팀과 연합하여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Hattusa[터 Hattuşaş]를 발굴했다.
Boğazköy란 이름을 거쳐 현재는 Boğazkale로 알려져있다.

Hattusa 발굴할 당시 위 조약도 같이 발굴해냈다.

조약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의 링크를 따라가면 있다. 여기

...
..
.

그런데 뒤에 큰 녀석이 있는데 그 놈이 오리지날인가?
나 사진 잘못 찍은 건가?


뒤가 원본인가? ㅜㅜ
사진 출처 : Wikipedia.






제일 위에 있는 사진과 마찬가지로
Funerary Stele란다.


미라라고 하기엔 부실한 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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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궁전 간다고 숙소에 있는
한국인한테 물어 봤는데 어디어디 있다고 해서 찾아나섰다.

이 근처에 있다고 했는데 왜 못찾겠지?
허우적거리는 중에 우연히 발견한 늘어선 줄.

뭣때문에 섰나 두리번 거리다가 발견~


Yerebatan Sarnıcı[Cistern] 혹은 Sarayı[Palace]
영어로는 Basilica Cistern.

수백여 개의 저수조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6세기 경, 비잔틴 제국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 시절에 만들었다.

원래는 3~4세기 경
초기 로마 제국 시대의 상업거래소, 집회장으로 지어졌었다.
이 바실리카는 476년 화재 이후 재건축 되었다.

고대 역사가들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세웠고,
532년, 도시를 다 부수어놓은 Νίκα 반란 이후
유스티아누스 1세가 재건축 및 확장하였다.

확장된 저수지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대궁전과
첫번째 언덕에 있는 다른 건물을 위한 정수장의 역할을 했다.


Constantinopolis의 일곱개의 언덕.
출처 : Wikipedia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에는
Topkapı Sarayı에 계속하여 물을 제공했고 현재에 이르렀다.

사이즈는 140m * 70m으로 약 9,800㎡.
지붕을 받치는 336개의 대리석 기둥은
12개의 줄에 28개의 기둥이 4.9m의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기둥 머리 부분은 주로 이오니아와 코린트 양식으로 만들었고,
조각이 없는 도리아 양식으로 만든 소수의 예외도 있다.

이 곳의 물은 Belgrad Ormanı[英 Belgrade Forest]에 있는
Eğrikapı 배수 센터로부터 왔다.

이 물은 Bozdoğan Kemeri와 Mağlova Kemeri를 거쳐서 왔단다.

현재는 바닥에 깔린 몇 피트 정도 높이의 물을 제외하곤
사실상 없다시피하지만 10만 톤의 물을 채울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몇 번의 복구를 했다.
1985년의 복구 작업 당시엔 5만 톤의 진흙이 제거되었고,
배를 대신하여 지금의 이동 발판들이 마련되었다.

9/Sep/1987, 현재의 상태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007 시리즈 두 번째 작품,
From Russia With Love[국내명 위기일발]의 촬영지이기도 했단다.




돈을 이렇게 던져놓았다.
생선들도 살던데 쇠독 올라서 이거 잘 살겠어?

아, 생선의 쇠독오름을 걱정해주는 남자.
그래요, 그게 나에요.


같은 위치에서 플래쉬 터뜨린 사진.


이 기둥은 테오도시우스 1세의 개선문에 있는 기둥과 닮았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눈물은 [눈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저 모양을 눈물이라고 한다]
이 저수조를 만들다 희생된 수백 명의 노예를 기리는 의미에서 만들지 않았나 한다.


엄청 많이 산다!!
저거 먹이는 누가 대?


메두사 머리를 한 기둥 뿌리.
머리들은 후기 로마시대의 건축물에서 떼와서
저수조로 가져왔다 생각되지만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걔네가 이전에 기둥의 기초로 사용되었다고
얘기할 만한 기록된 증거가 없다.


눈 높이에 맞춰 사진.


누워있는 메두사.
위에 있는 녀석은 눈동자도 없고 무표정인데
이 놈은 눈동자도 있고 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라
기분이 나쁘다.

전설?에 따르면 메두사 머리를 누이고 뒤집은 것은
고르곤의 응시the Gorgons' Gaze를 무효화하기 위함이라고 한다만
일반적으로는 기둥을 받칠 적당한 사이즈를 찾다가 그렇게 세웠다고 한다.


나가는 길에 아쉬워서 또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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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어제 왔던 곳이다.



Kariye Muzesi
Chora Church?

여기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봤다.
성지순례 뭐 이런 비스무레한 교회 관련한 투어로 왔나보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가득.

이 교회는 비잔틴 건축양식 교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교회 가운데 하나로 뽑힌다.

15 TL라는 ㅎㄷㄷ한 입장료를 지불하고 입장.


우측의 둘, St. Prokopius and St. Sabah Stratelates.




최후의 심판.






성인들.






세례자 요한과 동정녀 마리아를 예수가 중재해주는 모습?
세례자 요한은 사진에 없다.




사진 우측은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는 예수.


성 바오로, 파울로스




사진 아래 Presentation of the Virgin.
















요셉의 꿈과 베들레헴으로 이주.

















밖으로 나와 돌아오는 길에
케밥 집이 있어서 들렀다.

이거 치킨? 램?

못알아듣는다.. -,.-

얼마냐고 물으니 동전 1 TL하고
25 Kuruş 동전을 꺼내보였다.

그래서 하나 달라고 했다.

5 TL였나? 내고 거스름돈 받고 밖을 나와서
잔돈을 세어 보는데
어라? 이 새퀴 50 Kuruş 덜줬네?

다시 돌아가서 손에 쥔 동전을 다시 보여줬더니
웃으면서 50 Kuruş를 더 줬다.

근데 암만 봐도 이건 미안해서 웃는 게 아니고
떼 먹을 수 있었는데 못해서 아쉬워하는 표정.

이 씨발 새끼.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다. ㅋ

근처에 Fatih Camii가 있길래 여기 올라가서 먹었다.

그리곤 숙소에 돌아와서 인터넷질만 해대고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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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남쪽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기로 했다.


바다에 배들이 참 많다.



어느 정도 가다보니 나오는 성벽의 흔적.
예전에는 이 성벽이 다 둘렀을 것을 생각하니
난공불락의 도시라 일컬을만 하다.



숙소에서 출발 뒤 한 시간 하고 얼마를 더 걸었나?
드디어 성벽에 다다랐다.


성벽 밖에 공원이 있네?
İBB Parkı




조경이 잘되어있다.


꽃단장을 잘 해놨다.


형형색색의 꽃.



위로 조금 올라가 목적지에 다다랐다.


Google Maps로 바라본 Yedikule Hisarı.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상업적인 용도가 없습니다.
Yedikule는 일곱개의 탑이라는 뜻이다.
Yedi는 7, Kule는 Tower.


Yedikule Zindanları[Dungeon]
혹은 Yedikule Hisarı[Fortress].

속은 휑하다.


이 사진에 보이는 저 곳이
성 밖으로 통하는 Yedikulekapı[英 직역 Seven Tower Gate]
영어로는 Golden Gate.

수도 Constantinopolis[그 :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한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주출입문으로
군사적 승리 혹은 즉위식에 황제의 개선 입성식의 역할로 사용되었다.


위로 오르는 계단.
난간 손잡이가 없어서
나같이 고소공포증에 쩌는 사람은
올라갈 때 염통이 쫄깃쫄깃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진 왼쪽에 빨간기둥있는 건물은
Abdi İpekçi Arena[혹은 Abdi İpekçi Spor Salonu]라고
12,500석 규모의 경기장으로 남자 농구 Galatasaray Café Crown,
여자 농구 Galatasaray Medical Park의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 외에도 각종 스포츠, 공연을 이곳에서 한다.

최근엔 2010년 FIBA 농구 세계선수권 대회 예선을 치렀다.
이 대회를 가기 위해 天津에서 치른 2009년 FIBA 남자 농구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7위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거둔 우리나라는 당연히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경기장은 Abdi İpekçi의 이름을 따왔고
이 사람은 터키의 저널리스트, 지식인이자 인권운동가였다.

터키의 메이저 일간지 Milliyet[英 Nationality]의 주필로 재직중일 당시 살해당했다.
존경받는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정교분리를 지지했고,
터키의 다양한 소수민족의 인권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대화와 타협을 주장했다.

1979년 2월 1일, 회사에서 집으로 가려던 중
초국수주의자인 Ülkücülük[영어로는 Grey Wolves로 알려져있다]의
일원인 Oral Çelik와 Mehmet Ali Ağca에 의해 차안에서 살해되었다.

Mehmet Ali Ağca는 Grey Wolves의 도움으로
교도소 수감 6개월만에 탈옥하여 България[불가리아]로 도망친 뒤
1981년 5월 13일, Piazza San Pietro, Città del Vaticano에서
전임 교황인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의 암살을 시도한 것으로 더 알려져있다.


휑~


7개의 탑 가운데 하나로 올라가는 길.


벽에 딱 붙어 올라갔다.
아까 사진 찍었던 İBB Parkı.


뱅글뱅글뱅글 @,.@


바다에 떠있는 많은 배들.


폐가.


이 사진에 보이는 저 길도 좌우측 낭떠러진데 난간이 없어..
무서워..


배 참 많다.
폐공장인가?


배 참 많다.











Yedikule을 나와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했다.


부서지고 균열 일어나고..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어서 올라가봤다.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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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구질구질한게 비가 오다말다 한다.

비가 그친 틈을 타 Одеса, Україна[Odesa, Ukraine]에 가는
배편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직접 사무소엘 찾아갔다.

사실 İstanbul에서 배로 우크라이나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London에서 우크라이나 Lonely Planet도 샀다!!

뭐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엔 못갔고
처음 계획대로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애초에 여행으로 짰던 노선은
터키 - 시리아 - 요르단 - 시리아 - 터키 - 우크라이나였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사무실을 찾아서
가격이랑 시간표를 물어보고
의심스런 부분이었던 비자 관련해서 물어봤는데

직원분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도 있고
한국 비자 관련해서 [알 거라곤 생각 안했지만;] 물어보는 것도
대답이 시원찮고 대사관에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대사관 주소를 전달받곤 밖을 나섰다.

날이 꾸물꾸물해서 멀리 가긴 좀 그렇고
Mısır Çarşısı[Spice Bazaar]에 가기로 했다.
한국인에게 알려지기론 Egyptian Bazaar로 더 알려져있다.

어제 돌아오는 길에 찾는다고 찾았는데
도무지 못찾겠어서 오늘도 찾아보려 했다.

분명히 Yeni Cami 부근에 있는데..
왜 난 못찾겠지?

찾으려고 헤매다가 결국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큰 길따라 가니 교차로가 보이길래
뭔가 의심스럽지만 그리로 갔더만 전방에 수도교가 보이네 -,.-

아오, 이집션 바자르는 대체 어딨는거야!!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수도교 있는 쪽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Saraçhane Parkı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막 쏟아졌다.

아오 빡쳐!!

잽싸게 Şehzade Camii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어제 찍은 그 구도 그대로.

한 10분 정도 내렸나?
살짝 소강상태를 보이길래 화장실 가서 소변 보고
다시 돌아와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터키 화장실 돈 받는다고 해서 안가려고 했는데
비는 오지.. 움직이질 못하니 오줌은 마렵지..
그래서 빗줄기가 잠잠해진 틈을 타 화장실에 갔는데
어? 돈 내는 곳이 없는데? 하고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소변 보고 나오는데
돈 걷는 아저씨가 보이네 -_-;;

1 TL인가 0.5 TL 냈던 것 같다.
근데 나 말고 나랑 비슷한 시기에 소변 본 현지인 아저씨는
돈 걷는 아저씨랑 아는지 뭐라뭐라 하더니 그냥 갔다.

여튼 다시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비가 그치고 나서야 움직였다.

어제 지났던 길이라 익숙하다.


Bayezid Camii 또는 Sultan 2. Beyazıt Cami.


돌아오는 길에 찍었는데 이 사진은 당최 어딘 줄 모르겠다.
Google Maps 찍어봐도 Minare[英 Minaret]가 하나밖에 없는
그다지 크지 않은 모스크라 찾기가 힘들다.

하나 의심가는 곳이 있긴한데..
촬영 텀을 봤을 때
도저히 이 시간에 이 거리를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
결국 모른채로 남겨둔다.

그리곤 숙소에서 인터넷이나 하면서 삐대다가
아침에 이어 저녁으로 또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로 해결했다.

숙소에 돌아가 우크라이나 대사관 위치를 찾아봤는데
헐, Atatürk 공항 근처다.
그래서 여기 가는 건 애초에 포기~


이집션 바자르 찾으려 하다가 잘못 가서 허우적 거린 거리.

마지막 사진을 어디서 찍은 지 도무지 찾지 못해
아는 곳까지의 일정만을 그려 놓았음.

※이스탄불 - 오데사(우크라이나)간의 정기선편은
 2010년 7월 10일부로 경제 위기와 변화된 시장 상황으로 인한
 불충분한 승객 수와 화물 공급으로 인해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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