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을 하려는데 Aeroporto di Milano-Malpensa 주변에 비가 막 퍼붓는다.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착륙을 못하고 주변에서 뱅뱅 돌다가
그냥 강행을 하는건지 착륙을 시도하는데 덜커덩~ 소리와 함께 착륙에 성공.

승객들이 박수쳤다.
야호! 살았다! ㅋㅋㅋ

수화물 찾을 때 첫번째로 나온 가방이
비에 젖지 않아서 다행으로 여겼으나 그 다음 가방부터는 죄다 젖었다.

내 가방도 역시 홀딱 젖었수다.


비 내리는 Aeroporto di Milano-Malpensa, Somma Lombardo.

시내로 가는 공항 셔틀 버스에 올라 Milano로 진입하는데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시간이 존니스트 오래 걸렸다. 2시간 30분?

차 안에서 삐대는 동안 비는 그쳤다.

숙소에 도착하니 같이 CDG에서 비행기를 탔지만
나보다 늦은 비행기 탄 사람이 어째 더 빨리 와있냐 -_-

난 06시 50분 비행기고 다음 비행기는 08시 30분인데?
심지어 내가 위에 있는 사진 찍을 땐 그 사람은 Paris에 있었는데?

이보시오, 기사 양반.
대체 어느 길로 온 겐가 ㅠㅠ

숙소에서 잠시 정보 수집 겸 여독을 풀고 밖을 나서려고 했는데
아침 청소 시간이라고 밖으로 나가란다. -_-

쫓겨나듯 숙소 밖으로 나와버렸네..

일단 San Babila 역에서 내려 Via Monte Napoleone로 향했다.
여긴 작년에도 와서 길이 익숙하다.

Lanvin 신발 외엔 특별히 땡기는 물건이 없었기에
작년 여름 정기 세일때 둘러보았던 편집 매장과 주변에 몇 군데 매장에 가봤다.

버거킹에서 조식 겸 중식을 해결하고
마 이래 저래 둘러봤는데 기억이 안나서 그만 적을란다.
,
Paris에서 마지막을 장식할 행선지로는
드라마 のだめカンタービレ in ヨーロッパ의
주요 무대 가운데 한 곳이었던 Conservatoire de Paris로 정했다.

Porte de Pantin 역에서 하차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눈에 떡하니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다.


Cité de la Musique.


La Grande Halle.
예전엔 도축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현재는 무역 박람회, 전시회, 음악 공연장 등으로 쓰인단다.


Fontaine du Château d'eau,
또는 Fontaine aux Lions de Nubie.

그리고 다음의 사진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그곳!


Conservatoire de Paris!!
나름대로 비슷한 구도로 찍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햇빛을 등지고 찍게되었다.


요 사진은 1편에서 나왔던 장면을 캡쳐.


요 사진은 2편에서 나왔던 장면을 캡쳐.

상기 두 이미지의 저작권은 저작권사에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상업적인 용도는 없습니다.

차마 내부로는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외관만 찍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붕이 꿀렁꿀렁 웨이브.


꿀렁이 따라 끝까지 가보니 오호..
강인지 뭔지 건너로 건너가진 않았지만 사진은 담았다.


역시 물 건너.


놀이기구와 꿀렁이 지붕.

왼쪽엔 공원이 있었다. 


Parc de la Villette.




물 건너 둥그런 저건 La Géode, IMAX 극장이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조형물.


화장실.


쇠꼽으로 만든 수차?


저기 저편 숙박업체 Holiday Inn.




La Grande Halle 앞 광장. 이름은 모르겠다.


출입구는 출입군데 Cité de la Musique인지 Conservatoire de Paris인지 모르겠다.
추측건데 Cité de la Musique인 듯 싶다만 단언할 순 음슴.

시간이 제법 늦은 듯 하여 숙소로 잽싸게 돌아갔다.

내일 새벽 비행기라 공항에 가서 밤을 지내겠다고 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자고 새벽에 차타고 가라고 하시는데
4시 즈음에 차가 있냐 물으니 그 땐 없다면서 택시 불러서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비싸서 안된다고 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밖이 제법 어두웠다.

..
.

Aéroport Paris-Charles-de-Gaulle에 도착해서
어디서 이 밤을 지새워야 할까... 이래저래 누울 자리(?)를 찾아봤다.

오호.. 벤치 뒤에 공간있어요.
벤치 뒤에 자리가 있길래 누웠다.



자정이 지나 새벽에 경비원이 순찰하면서
이 새퀴가 노숙잔지 여행객인지 하는 모양으로 날 쳐다보았다.

찬 맨바닥에 누워 있으니 잠이 들지 않았다.
한 30분이나 잤으려나? 뜬 눈으로 비행기를 맞이했다.

간다. 다시. Italia로.
,




브이넥이랑 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웨이는 중간에 x로 꿰매진 노란 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복귀 기념으로 긴팔 홈으로 한 번 질러 봐?

All images are from the official West Ham United website.
모든 이미지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하였고 상업적인 용도가 없습니다.
,
Panthéon에서 나와 바로 지척에 있는 Jardin du Luxembourg로 이동.


비둘기 집.


이 조각이 뭐더라..
뒤의 건물은 Palais du Luxembourg.


날이 갑자기 꾸리꾸리 해졌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다.


조각상은 L'Acteur Grec.
왔던 길 뒤로는 Panthéon이 보인다.


Palais du Luxembourg.


공원이 꽤 크다.


웬 배들을 이렇게 띄워놨을까나..



근처에 있는 Cimetière du Montparnasse로 재빠르게 갔다.


Camille Saint-Saëns의 가족묘 안.


밖.

시간 상 눈에 딱 띄었던 Camille Saint-Saëns의 묘만 보고 왔다.

미리 누가 잠들어있는지 알아갔다던가
그게 아니라 시간적인 여유만 조금 더 있었더라면
적어도 Guy de Maupassant의 묘 정도는 더 찍고 왔을 텐데.
,

전경.







입장.












L'an huit cent. le jour de noël. dan la basilique de Saint Pierre.
A Rome le pape Leon III couronne Charlemagne empereur d'occient.




La convention nationale par François-Léon Sicard.






Tombeau de Voltaire.


Statue de Voltaire d’après Houdon.


Marie Curie-Skłodowska와 남편 Pierre Curie.


Marie Curie-Skłodowska.




Victor Hugo.


Alexandre Dumas.
Cimetière de Montmartre에 있는 Alexandre Dumas는 아들fils이고 여기 있는 사람은 아버지père.
삼총사랑 몽테 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하다.


Cimetière de Montmartre에서 이미 언급한 Émile Zola.


Parc Jean-Jacques-Rousseau.
Ici repose l'homme de la nature et de la vérité라고 써있다.
발번역하자면 여기 자연과 진실의 남자가 잠들다.






A la Gloire des Généraux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Paul-Jean-Baptiste Gasq.




Aux orateurs et aux publicistes de la Restauration.
Laurent-Honoré Marqueste.


Valmy 전투에 관한 조각.


Le vengeur.


La mort.

바깥구경을 위해 돔 위로 올라갔다.




Mairie de 5e arrondissement. 5구청.




Église Saint-Étienne-du-Mont.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Université Paris III : Sorbonne Nouvelle.


중앙의 뾰족한 돔이 있는 건물은 Université Paris IV : Paris-Sorbonne.
3사분면에 5구청과 같이 생긴 건물은 Université Paris 1 : Panthéon-Sorbonne.


Tour Maine-Montparnasse와 Tour Eiffel.


Tour Eiffel과 Église du Dôme 그리고 La Défense.


좌측에 쬐깐하게 보이는 Basilique du Sacré-Cœur와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



해시계?

입장.
학생할인으로 €6.5 냈다.






Vierge de Pitié.


Buste-reliquaire : compagne de sainte Ursule.


Christ des Rameaux.






Croix.
Face : Christ, Vierge Marie, Saint Jean Baptiste, deux archanges.
Revers : scènes de l'enfance de la Vierge.






Croix processionnelle.


Autel portatif.




Crosse dite "des abbés de Clairvaux"




Croix à double face.


Reliquaire - monstrance.


Croix à double face.


Reliquaire de l'ombilic du Christ.




Rose d'or de Minucchio da Siena.


Fermail-reliquaire.


Coffret-reliquaire.


Croix-reliquaire de la Vraie Croix.








Retable de la Nativité.










Marie Madeleine.




Retable de la passion.





Vue de la salle de la "Dame à la licorne"로 입장.


La Dame à la licorne "A mon seul désir"


左, La Dame à la licorne "L'Ouïe"
右, La Dame à la licorne "La Vue"
















Adam par Pierre de Montreuil.


Sainte Femme.


Fragment de statue d'applique : prophète.


Chapiteau double aux sirènes affrontées.








Sainte Marie-Madeleine.



,

Pont d'Arcole를 건너 Île de la Cité로 들어왔다.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구구구구구구구구~


Rue de Lutèce 끝에서 바라본 Palais de Justice de Paris.






늘어선 갱찰 봉고차들?




Île de la Cité와 Rive Droite [한 : 오른쪽 제방, 意譯 : 강북]를 연결하는 Pont Neuf.
이름답지 않게 Paris에서 Seine을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Île de la Cité 서쪽 끝에 있는 Square du Vert-Galant.
내려가보진 않았다.




Île de la Cité와 Rive Gauche [한 : 왼쪽 제방, 意譯 : 강남]를 연결하는 Pont Neuf를 건너 한 컷.

Seine을 따라 동쪽으로 다시 돌아가 Shakespeare and Company에 도착.




영화 Before Sunset이나 Midnight in Paris를 보지 않아서
이 서점에 관한 애착이나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Maoz라는 곳에서 فلافلFalafel를 판다길래
레바논을 추억하기 위해 거기 가서 Chips와 함께 오랜만에 잡숴봤다.


중세 박물관으로 가려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다가 찍은 Fontaine Saint-Michel.
,
남들은 조식 후에 총알같이 나갔는데
나는 여기 6일 차이기도 하고 오늘은 어딜 돌아다녀 볼까 알아도 보고
인터넷으로 뭔 일이 일어난 건 없나 살펴보고 있는데

숙소 주인 아주머니가 유랑에 본 숙소에 대한
악의적인 게시물이 있어서 해명 좀 해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도움을 청하시나 봤더니

글쓴이 본인은 그곳에서 머물면서 베드버그에 물렸고
침대 시트를 들어올려보니 베드버그가 득실거렸다는 둥
이런저런 악의적인 내용의 글을 썼었다.

숙소에서 머문 기간을 보니 나랑 며칠 같이 있었는데
그땐 숙소 내의 누구에게도 베드버그의 '베'자도 안꺼냈는데
떠나고 나니 이게 무슨 개소리람?

주인 아주머니의 태도 혹은 서비스가 마음에 안들었다,
숙소가 좁아서 불편했다 혹은 정숙을 강요해서 불편했다 하는 것은
개인차가 있으니 누구에겐 마이너스 요소로 다가올 순 있지만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소문을 내는 건 무슨 행동인가 싶다.

그래서 댓글 살포시 남겨주고 아주머니께 남겼다고 말씀드리니 고맙다고 하셨다.

한국 시간 6일 17시 01~24분 사이.
프랑스 시간 6일 10시 01~24분 사이.


문제의 게시물에 올린 댓글. 원문은 삭제되었다.
벌레 물린 것 인증샷 보이라고 하니 지운 듯 하다.

이제 밖으로 슬슬 나가볼거나..

먼저 Musée Picasso로 가기로 해서 Bastille‎ 역에서 하차했다.

Bastille‎ 역의 1호선은 딱 플랫폼만 지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찍은 바깥 모습. Port de Paris Arsenal.


역에서 나와 찍은 같은 방향의 모습.


Place de la Bastille의 한 가운데 세워놓은 Colonne de Juillet.


Opéra Bastille.


Colonne de Juillet.


Eglise Réformée du Marais.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니 다음과 같은 건물이 있길래 호기심에 가봤다.


Place des Vosges로 향하는 길. Pavillon du Roi.


이 건물은 Hôtel de Sully의 일부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Façade sur jardin de l'hôtel de Sully.




Arcades.


Place des Vosges 남서쪽 분수.


구구구구구~


Place des Vosges 남서쪽 분수.


Statue de Louis XIII.

Cette statue
oeuvre de DUPATY et CORTOT
élevée le 4 novembre 1829
a remplacé
l'ancienne statue de bronze
érigée en 1639

이 동상은 1639년에 세워진 오래된 동상을 대신하여
Charles Dupaty와 Jean-Pierre Cortot가 만들어 04/11/1829에 세워졌다.


Place des Vosges 북서쪽 분수와 북쪽 출입구.


사진 찍은 위치. 비둘기는 607과 609 사이 잔디밭 어딘가.

Place des Vosges를 빠져나와 Musée Picasso로 계속 고고고.


Hôtel Carnavalet. Musée Carnavalet의 한 부분.


오호..Karl Lagerfeld 그림을 박은 옷이 다 있네그려..


그림이 인상적이라 한 컷.

Musée Picasso에 도착했다.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라서 사진을 담을 순 없었다.

Picasso의 사진이 꽤 많았다. 그림보다 사진을 더 본 듯한 기억이다.


밖으로 나와서 한 컷.

공사중이라 건물의 절반을 반사가 잘 되는 판때기로 가려놓았다.
미술관 전시품의 주인공인 Picasso 때문인지 센스있는 모습이다.


반을 가른 모습.


Centre Pompidou로 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無印良品. 신기했다.



Centre Georges-Pompidou 도착.


공장 스똬~일.

입장했으나 입장료의 압박에 내부 구경은 포기.
입장료가 들지 않는 도서관만 스윽 둘러보고 나왔다.


반대편 모습.


Ircam 앞의 자그마한 연못과 Église Saint-Merri.
Institut de Recherche et Coordination Acoustique/Musique.




조형물들.


좌측 건물은 Ircam, 우측은 Centre Pompidou.


Église Saint-Merri로 들어갔다.








그 주변에 있던 게이숍이었던 듯.
Sorry Girls라는 표현이 재치있었달까? 위트를 느껴 한 컷 담은 듯 하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니 Hôtel de ville de Paris가 뚜둥!!
현재 Paris 시청사로 쓰이는 건물이다.


Bastilles에서 Hôtel de Ville까지.
,


出演者 本木雅弘, 松たか子, 真木よう子, 大森南朋, 北大路欣也

지난 금, 토 양일에 걸쳐 몰아서 샤샤삭 봤다.

국가가 마음 먹고 사람 하나 박살 내고자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이와 같진 않나 하는 생각에 몰입력이 꽤 높은 드라마였다.

오키나와 반환에 관한 내용을 다룰 순 없으니
소재만 살짝 바꿔서 리메이크 하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화에 주일미군에게 성폭행 당한 아이를 소재로 극을 이어가는데
자연스레 미군 장갑차가 우리나라 중학생 둘을 압사한 사건이 떠올랐다.

마지막화 中,
国が本当のことを言うとは限らない。
いつの時代も犠牲になるのは国民だ。
国の嘘や まやかしを暴いて 真実を伝えることが 世の中を変えることだ。

국가가 진실만 말한다고는 할 수 없어.
어느 시대라도 희생되는 건 국민이야.
국가의 거짓이나 속임수를 폭로해서 진실을 전하는 게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라는 주인공의 대사는 꽤 인상적이었다.

내용과는 별개로 주인공 本木雅弘 모토키 마사히로의 체격이 좋아서 정장이 잘 어울렸다.
몸이 007 시리즈에 나오는 Daniel Craig 같이 떡 벌어진 뒷모습이 멋졌다.

시청 동기는 순전히 松たか子 때문이었는데
그 다지 비중이 크지 않은 것도 있고 역할이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극중 그녀의 사촌인 鯉沼 玲코이누마 레이가 결혼하자고 하는데
하... 극을 이어가는데 연관이 있나? 역사적 사실인가?
弓成由里子의 갈등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역할인가?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 부분을 억지로 첨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4촌이 결혼하자고 하니 우리나라와 달라 다소 보는데 불편했다.
물론 일본의 민법에는 4촌간의 결혼은 전혀 제약이 되지 않지만 말이다.

※民法 第734条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본 드라마는 실제의 인물, 단체와 관련이 없다고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소설이라 극의 내용 전개에 있어 중심이 되는 대부분의 인물은 이름만 슬쩍 바꾸었다.

등장 인물 및 실존 인물 비교.
이곳의 글을 참조하여 약간의 역사적 내용을 보강해서 올려본다.


주축이 되는 관계도. 자세한 부분은 생략한다.

弓成亮太…本木雅弘 모토키 마사히로

弓成亮太 유미나리 료타 : 西山太吉 니시야마 다키치
마이초 기자
 
: 毎日新聞 기자 (1심 판결 후 퇴사) → 가업 니시야마 청과 취직 → 1991년 퇴직
  → 現 재야 저널리스트
















弓成由里子…松たか子 마츠 다카코

弓成由里子 유미나리 유리코 : 西山啓子 니시야마 히로코
: 특별히 알려진 바 없음.
*啓子를 케이코가 아니라 히로코라고 읽는다.
















三木昭子…真木よう子 마키 요코

三木昭子 미키 아키코 : 蓮見喜久子 하스미 키쿠코
: 특별히 알려진 바 없음.

















山部一雄…大森南朋 오오모리 나오

山部一雄 야마베 카즈오 : 渡邉恒雄 와타나베 츠네오 
요미니치 기자
 
: 読売新聞 기자 → 読売新聞社長 → 読売ジャイアンツ 구단주 → 일본신문협회장
  → 読売ジャイアンツ 대표이사

보수적인 언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역사 수정주의 운동에는 반대 입장을 취하고있다.
군 시절에 상관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 등,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 혐오감을 품고 있다고 한다.

中央公論 2006年10月号에서 渡邉恒雄는 특공 작전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인간을 물체로 병기화 한 군부 당사자의 비인간성은 일본군의 명예가 아니라 오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中曽根康弘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억지로 은퇴시킨 小泉純一郎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에 매우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北京週報 日本語版 2007年8月10日付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고 한다.

"만약 (독일 총리) Merkel이 Hitler의 묘를 참배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靖国神社야스쿠니 신사의) 遊就館류슈칸은 매우 유해한 장소이고, 저것은 폐쇄해야 한다.
産経新聞산케이 신문을 제외하고 일본 언론은 전쟁 책임과 靖国神社 등의 문제에 대해 중요한 공통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나는 절대로 참을 수 없다.
앞으로 누가 총리가 되든 상관없이 모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여야 하며, 이것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 만약 다른 사람이 총리가 된다면, 나도 그 사람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도록 요청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발행 부수 1000여 만부의 "요미우리 신문"의 힘으로 그것을 쓰러뜨린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佐橋慶作…北大路欣也 기타오오지 긴야

佐橋慶作 사하시 케이사쿠 : 佐藤栄作 사토 에이사쿠
내각총리대신 : 제61·62·63대 내각총리대신 → 1974년 노벨 평화상 수상 (최초의 아시아인)

20세기에 태어난 최초의 총리.
小笠原諸島오가사와라 제도·沖縄오키나와의 반환 실현.

"核兵器をもたず、つくらず、もちこませず。"
"핵무기를 가지지 않고, 만들지 않고, 반입하지 않는다," 라는 비핵 삼원칙非核三原則으로 197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평화상에 대한 논란.
평화상 수상은 상기의 비핵삼원칙의 제정 등이 평가되었지만
이 수상에는 加瀬俊一카세 토시카즈의 로비 활동이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사토 에이사쿠도 일기에 카세 토시카즈에 사의를 표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2001년에 간행한 기념지,
『The Nobel Peace Prize: One Hundred Years for Peace: Laureates 1901-2000』에서
"사토는 베트남 전에서 미국 정책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일본은 미군의 보급 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에 공개된 미국 공문에 따르면, 사토는 일본의 비핵 정책을 넌센스라고 말했다,"고 적어
수상 이유와 실제 정치 자세와의 간극을 지적했다.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Øivind Stenersen은 출판 기념회견에서
"사토를 선택한 것은 노벨상위원회가 범한 최대의 과오," 라는 견해로 당시의 심사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사토는 원칙적으로 핵무장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福出赳雄…笹野高史 사사노 타카시

福出赳雄 후쿠데 타케오 : 福田赳夫 후쿠다 타케오
외무대신
 
: 농림대신 → 외무대신 → 행정관리청 장관 → 대장대신 → 부총리·경제기획청 장관
  → 제67대 내각총리대신

동남아 외교의 기축이 된 후쿠다 독트린, 중일 평화 우호 조약 체결, 한일 대륙붕 협정 비준.
1978년 종전일(8.15)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 "내각총리대신"이라고 서명하고 "사적 참배"라고 했다.













吉田孫六…升 毅 마스 타케시

吉田孫六 요시다 마고로쿠 : 吉野文六 요시노 분로쿠
아메리카 국장 : 좌동

















安西 傑…石橋 凌 이시바시 료

安西 傑 안자이 스구루 : 安川 壮 야스카와 타케시
외무성 경제 심의관 (경질) → 주미대사 발령 : 좌동

















横溝 宏…市川亀治郎 이치카와 카메지로

横溝 宏 요코미조 히로시 : 横路孝弘 요코미치 타카히로
사진당 의원 : 사회당 의원 → 北海道홋카이도지사 → 중의원 부의장 → 現 중의원 의장 (민주당 소속)

















田淵角造…不破万作 후와 만사쿠

田淵角造 타부치 카쿠조 : 田中角栄 타나카 카쿠에이
통산대신 : 통산대신 → 제64·65대 내각총리대신

중·일간 국교 정상화 공동 성명 발표. 같은 날 중화민국 정부는 대일 국교 단절 선언.
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小平正良…柄本 明 에모토 아키라

小平正良 코히라 마사요시 : 大平正芳 오오히라 마사요시
자유당 의원 : 자유당 의원 → 외무대신 → 통산대신 → 외무대신 → 대장대신 → 제68·69대 내각총리대신

















曽根川靖弘…本田博太郎 혼다 히로타로

曽根川靖弘 소네가와 야스히로 : 中曽根康弘 나카소네 야스히로
자유당 의원, 극중 마지막 내각총리대신
 
: 방위청장관 → 통산대신·과학기술청 장관 → 행정관리청 장관
  → 제71·72·73대 내각총리대신

현직 총리대신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해 전두환과 정상회담.
현직 총리대신으로는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마음에 들었던 장면.

본 작품의 기초가 된 니시야마 사건과 비슷하지만 다른 결과를 이끈 전례로
Daniel Ellsberg가 New York Times에 공개한 Pentagon Papers가 있다.

상기 이미지의 저작권은 저작권사에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하였고 상업적인 용도가 없습니다.
,
이제 거의 다 둘러본 것 같다.

다시 1er étage로 이동해서 나가는 길에 마저 보기로 결정.


Anse de cratère à volutes.
Salle des Bronzes (Salle 32).


Gaine de suspension : combat d'un Grec et d'une Amazone.
Salle des Bronzes (Salle 32).


Vénus.
Salle des Bronzes (Salle 32).

뻘글을 달아보자면 이 조각상의 발가락을 보면 두 번째 발가락이 더 긴데
이는 그리스형 발가락이라고 유럽에서 출토되는 조각상은 거의가 두 번째 발가락이 더 길다.

반면에 이집트 벽화같은 곳에서 보면 얘네는 엄지 발가락이 더 긴데 이는 이집트형 발가락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약 60%가 이집트형 발가락, 약 7%가 그리스형 발가락이고
그 나머지 33% 정도는 엄지와 검지의 길이가 같은 사각형 발가락이란다.


Éros et Psyché.
Salle des Bronzes (Salle 32).

Aile Denon 동쪽 끝에 별실같이 긴 전시관이 있는데 요것이 Galerie d’Apollon이다.


Galerie d'Apollon (Salle 66).


Louis XIV1 dit le Roi-Soleil.


큰 놈은 Couronne, dite de Charlemagne.
작은 놈은 Couronne de haut de tête de l'impératrice Eugénie par Gabriel Lemonnier, joaillier.

작은 왕관은 현재는 볼 수 없는 작품이라고 홈페이지 상에 나와있다.
Cette oeuvre n'est pas visible actuellement dans les salles du Musée.

하지만 대신 Couronne de Louis XV를 볼 수 있다.


에페, Épée de cour.
Louis 15세 혹은 그의 아들 Louis-Xavier-Joseph, Dauphin of France의 Épée.

다시 Aile Sully로 이동.


Aile Sully 남쪽 전시실 한가운데에서.




Le roi Aménophis IV-Akhénaton.
Le Nouvel Empire (Salle 25).


La reine Tiy aux côtés du roi Aménophis III.
Le Nouvel Empire (Salle 24).


Le "scribe accroupi".
L'Ancien Empire, vers 2700 - 2200 avant J.-C. (Salle 22).

Rez-de-chaussée로 이동.


Sarcophage d'Eshmunazor II, roi de Sidon.
Levant : les royaumes phéniciens (Salle 17 a, salle fermée au public, non exposé).

위를 끝으로 나간 배터리는 다시 켜지지 않았다. -_-
회화 찍을 때 이미 삐용삐용 징조를 보여서 급격하게 줄어든 컷 수...-_-;

내 배터리 왜 이리 조루가 됐지...

하긴 몇 달을 매일같이 써줬으니
상태가 나빠질 만도 하긴 한데 그래도 이건 아닌 듯. ㄱ-

어쩔 수 없이 숙소로 텔레포트~

중식을 해결하기 위해 숙소 주변 빵집을 탐문하였으나 죄다 닫았다.
심지어 대형마트인 Monoprix 마저..-_-


Monoprix도 닫으면 어쩌란 말이냐!

빵집이 문을 안열면 어떡하란 말인가..
동네 빵집이라 그런가. 

일요일에 문 안열면 얘네들은 토요일에 물건 사서
일요일엔 냉동 돌려먹나..-_-;

갑자기 빵 먹고 싶은데 아 어디로 가야 빵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빵 사러 지하철 타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Paris의 일요일은 대체!!


Ed도 문 닫았다.
하긴 더 큰 Monoprix도 닫은 마당에 Ed가 뭐라고..


Ed는 현재 Dia로 명칭이 변경된 듯.

그런데.. 찾았다!!

열려있는 빵집!!

이것저것 주워담고 계산을 하려는데 얼마에요라고 영어로 물어보니 불어로 답한다.

그래서 알아들을 길이 없는 바, €20 주고 잔돈을 받았다;
€5도 안나왔네.

물건 받고 Merci라고 한 다음 나갈 때는 다시 Bye 작렬-_-;


상기 이미지 네 컷은 Google Street View에서 가져왔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하였고 상업적인 용도가 없습니다.
,